學林50년…
[광란의 젊은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정말 사실일까/…/ 학림다방은 남았다/ 여러 차례 주인이 장르별로 바뀌었다가]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맡은 김정환 시인의 뜨거운 헌시가 장내를 지그시 눌렀다. 이날을 위해 모인 특별한 손님들도 감회에 젖어 갔다. 26일 오후 8시 대학로 학림다방.
대학이 곧 낭만과 동의어이던 시절, 옛 서울대 캠퍼스 옆에는 1956년 문을 연 학림(學林)다방이 있었다. 최루탄 연기에 쫓기다 이제는 커피전문점과 피자집에 떠밀리고 있지만, 여전히 학림다방은 대학로에 건재하다. 다방이 문 연 지 50년이 되는 올해의 세밑, 이날 열린 이색 송년회는 사이버 문명으로 숨가쁘게 치달아온 우리 사회의 시계를 잠시 붙잡아 두는 듯했다.
26일 연출가 강준혁-작곡가 강준일 쌍을 필두로 한 학림다방의 송연회 마당은 이후 언론인 홍세화-춤꾼 채희완, 연극인 김민기-가수 윤선애, 화가 김정헌-소리꾼 임진택, 시인 황지우-가수 전인권,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씨가 날짜를 바꿔가며 등장, 이들의 입담과 재주로 31일까지 매일 오후8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진다.
연희자와 관객 모두가 앉아서 즐기는, 옛날 사랑방 정경이 그대로 재현된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 손때 묻은 나무 탁자, 클래식 LP 음악 등 학림다방은 곧 대학의 역사였다. 대학이 낭만과 특권의 집합소인지, 아니면 역사와 사회 변혁의 주체인지를 두고 대학의 주체들이 격렬히 고민하고 있을 때 학림다방은 클래식과 잘 볶은 커피로 그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제공했다.
학림다방 하면 금방 떠올리게 되는 변함없는 커피맛도 화제. 20년째 이곳 사장으로 있는 이충렬(52)씨는 정찬씨의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케이(K) 사장’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화계 인사가 됐다. 큰길 건너편에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면서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김민기씨와는 그야말로 이웃사촌이다.
26일에는 언론인 선재규씨가 사회자이자 1일 사장으로 나섰고, 이어 토종연구가 홍석화, 변호사 서현, 시인 강형철, 전 매경바이어스 가이드 대표 유영표, 연극인 오종우씨가 31일까지 하루씩 사장을 맡아 송년회장을 찾는 손님들을 맞는다.
장병욱기자 aje@hk.co.kr